심리학에 관한 서적들이 많다. 방송에서도 요즘 정신심리학 전문의가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그만큼 현대인들은 문명의 이기를 누리면서도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누군가에 기대고 싶고 나약해지기 쉬운 상태다. 심리학은 윤리학이나 철학과 뗴어놓고 생각할 수 없듯이 경제학과 사회학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래서 심리학을 공부할려면 모든 분야에서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좋다.
한편에서는 심리학이 마음의 평안이나 행복을 위한 하나의 방도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한 비법을 담은 책은 실제로 없다. 다만, 그러한 길로 인도는 해줄 수 있을 뿐이다. 결국 책을 통해서나 상담사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 본인에 대한 의문을 품어나가야 한다. 어쩌면 심리학의 목적이 그러함일지도 모른다.

나란 도대체 누구인가
인간은 고귀하다. 인류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조상들은 생존을 위해 권력을 위해 상대방을 짓밟고 올라서야 했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전쟁이라는 큰 공동체의 싸움으로 번졌다. 하지만 이러한 전쟁사로 우리 인간사를 모두 밝혀낼 수는 없다. 다만, 너무도 자극적이이서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될 뿐이다.
나는 인간이며 개인이면서 인류의 모든 특징을 한 몸에 지니고 있다. 우리의 인격은 인간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이성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인격에 대한 연구에 관심이 많다.
인간과 동물의 구분
동물은 주변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간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 종은 멸종되기 때문이다. 반면,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기도 하지만 스스로 환경을 변화시킨다. 또한 인간은 자신을 구분 짓는 자질이 있어서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상상할 줄 안다. 본인을 독립된 개체로 여기며 감각을 최대한 이용하고 세상을 이해하려 한다. 이러한 것들이 동물과 구분되고 지구를 지배하게된 인간의 주요 특징이다.
인간과 양심
인간은 정의, 사랑, 진실 등 자신의 지식과 믿음을 포기하려 만드는 온갖 압력에 저항하고 양심에 따라 행동하려 했다.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는 진실과 타협하며 양심을 배신해야 하는 삶보다 죽음을 선택했다. 반면 겉으로만 양심을 내걸고 뒤에서는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무리들도 있었다. 위에서도 살펴봤지만 본인의 권력욕을 채우고 전쟁을 치르기 위해 각종 명분을 내걸었다. 수많은 양심적인 사람들이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일부 양심없는 인간들에게 처형당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양심을 내세울건지 아니면 양심을 팔아먹어야 하는지 헷갈릴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과거 문헌을 통해 양심을 지켜야 겠다는 마음으로 선회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세네카는 양심을 마음의 목소리로 정의하며, 마음의 목소리는 윤리적 기준에 따라 우리 행동을 나무라거나 옹호나는 것이라고 규정하였다. 크리시포스는 양심을 마음속의 조화 의식으로 묘사하기도 하였다.
인간과 이기심
작금의 현실과 달리 우리는 이기적인 태도는 버리고 타인을 사랑하라는 태도를 배우게 된다. 하지만 인간에게 가장 강력하고 적법한 욕망은 이기심이며 이를 억누르지 못해 발현되어 인간에게 이익을 가져다줘 현대사회를 지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이기심은 자기애와 동일시된다. 그러므로 타인을 사랑하고 도덕적으로 행동할지 아니면 본인을 사랑하며 죄를 지을지 둘 중 하나는 선택해야 할지도 모른다.
니체에 따르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이 건강한 귀족정치의 본질이라고 했다. 인간 본성에 대한 경멸과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언급한 구절은 의외로 많이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모순된 두가지 가르침에 혼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더해서 무력감에 빠뜨리거나 당혹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리고 문득 이러한 질문들이 떠오른다. 현대인의 이기심은 이성, 정서 및 감각 등 모든 방면에서 잠재력을 지닌 개인으로서 자신에 대한 관심일까? 현대인은 사회경제적 역할을 가지고 있는 부속물로 전락한 것은 아닐까? 현대인의 이기심은 자기애와 정말 동일시 되는걸까? 오히려 자기애가 부족한 탓에 생겨난 것은 아닐까?

인본주의
인본주의 윤리학에 따르면, 인간에 대한 지식이 규범ㅁ과 가치를 결정하는 기초가 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미덕은 곧 행위라 말하며 행위는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능력과 기능의 행사를 뜻하며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은 행위 즉 능력과 기능을 행사한 결과로 얻는 것이라 하였다. 스피노자는 궁극적으로 이성의 지시에 따른 행동과 삶과 보존은 동일한 것이라 하였다.
인간과 행복
스피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행복은 미덕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미덕 자체다. 우리가 욕망을 억제하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하기 때문에 욕망을 억제할 수 있는 것이다.
쾌락주의자들의 말을 빌리자면, 쾌락은 실질적이나 규범적으로 인간 행동을 끌어가는 원리라 한다. 쾌락을 얻고 고통을 피하는 게 삶의 목적이고 미덕의 기준이라면서 쾌락은 그 순간의 즐거움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쾌락주의는 개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쾌락은 행복을 즉각적인 경험과 동일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에피쿠로스는 한발 물러선 모양새다. 쾌락은 삶의 목적이지만 쾌락은 그 자체로 선하지만 모든 쾌락이 선택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헀다. 일부 쾌락은 당장의 즐거움보다 추후 더 큰 괴로움을 언겨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인본주의 철학자들은 비쾌락주의로 진실과 보편성의 기준을 유지하면서 개인의 행복이 삶의 궁극적인 목표라 주장하였다. 특히 플라톤은 선한 사람은 참된 쾌락을 누리지만 악한 사람은 거짓된 쾌락을 누린다라고 말했다. 아리트스토텔레스도 비슷한 관점에서 쾌락이라는 주관적인 경험이 어떤 활동의 옳고 그름, 즉 그 활동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결론저긍로 공통점만 요약하자면, 쾌락의 주관적 경험은 그 자체로는 가치를 결정할만한 기준이 아니다. 행복은 선고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쾌락을 평가하는 객관적 기준은 어떻게든 찾아낼 수 있다.
현대인들은 자유로부터 도피하려는 성향을 지닌다고 한다. 자유는 부담스럽고 두렵게 느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자유를 추구할 수 있을까? 이는 인류의 영원한 숙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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